저자, 이치조 미사키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로 제26회 전격 소설 대상 '미디어 워크스 문고상'을 수상, 화려하게 데뷔했다.
자칫 진부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치밀한 구성과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반전으로 풀어내 수준 높은 청춘 소설을 창조했다는 극찬을 받으며 뛰어난 신인 작가의 등장을 알렸다.
또 다른 작품으로는 <네가 마지막으로 남긴 노래>가 있다.
"너랑 사귀어도 되지만 조건이 세 개 있어.
첫째, 학교 끝날 때까지 서로 말 걸지 말 것.
둘재, 연락은 되도록 짧게 할 것.
마지막으로 셋째, 날 정말로 좋아하지 말 것. 지킬 수 있어?"
모르는 남자애의, 모르는 여자애
괴롭힘을 당하는 친구를 위해 한 거짓고백으로 서로를 알아버린 두 주인공의 대화 중 일부이다.
처음부터 등장하는 이 세 가지 조건만 보았을 때는 여자 주인공이 남자 주인공을 놀리려고 하는 조건인 줄 알았다.
그래서 재미있게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책이 끝나갈 때쯤 내가 이렇게 울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는 '아. 이 책이 수상을 받을 만했구나'라는 생각과 이미 영화로도 접해보았던 '선행성 기억상실증'이란 병을 진부하지 않게 풀어냈다는 생각도 들었다.
'선행성 기억상실증'이란 어느 기점을 중심으로 매일매일의 기억이 뇌에 저장되지 않는 병을 말한다.
'나는 사고로 기억장애를 갖고 있어요. 책상 위에 있는 수첩과 일기를 읽어보세요.'
'매일매일 전력으로.'
'좌우지간 수첩이다. 자, 책상 위를 봐라'
매일 아침 사고가 난 날부터 기억이 없어 매일 아침이 생소한 여자 주인공 히노, 그런 히노를 지켜봐야 하는 부모님들.
자고 일어나면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 하는 그래서 또래 친구들 같은 미래는 꿈도 꿀 수 없는 히노였다.
그런 히노 옆에는 히노의 병을 알면서도 히노를 옆에서 도와주고 도루와의 사랑을 지지하는 든든한 친구 이즈미가 있었다.
선행성 기억상실증으로 인해 미래를 꿈꾸지 못하던 히노에게 '절차 기억'이라 불리는 신체 감각에 근거한 기억을 알려주어 꿈을 포기하지 않게 도와준 도루.
소풍도 다니고 도시락도 먹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히노에게 도루는 고백을 한다.
정말로 좋아하게 되었다고 그때 히노는 도루에게 자신의 병에 대해 얘기해준다.
도루는 히노에게 자신이 고백한 것도 자신에게 병에 대해 얘기해 준 것도 적지 말라고 하며 둘은 만남을 계속 이어나갔다.
이 부분에서 히노도 도루를 정말 많이 좋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저 빛을 잃었던 것뿐이다.
히노에게 빛을 받은 지금의 나는 그것을 알 수 있다."
도루는 심장마비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어머니와 그런 어머니를 보내고 약해진 아버지, 자신의 꿈을 위해 집을 떠난 누나, 자기도 언제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산다.
친구를 위해 시작한 가짜 연애지만 이 두 사람의 이야기는 그저 그런 청춘의 사랑은 아닐 것이다.
미래를 보장하지 못하는 히노와 그런 히노를 사랑하는 도루.
이 둘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도 계획하지 못하는 그런 비현실적인 사랑을 이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난 진짜로 히노를 좋아해. 무슨 당연한 소리를 하냐 싶을지도 모르지만 진짜로 좋아하거든. 그러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면 뭐든 해주고 싶어. 아니, 해준다는 건 오만한 말이네. 하고 싶어. 히노가 기뻐할 일이면 뭐든 하고 싶어.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히노를 알고 난 후부터 히노를 위한 일은 무엇이든 하는 도루를 보며 히노가 기억이 돌아왔을 때도 함께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 히노를 두고 무언가를 준비하는 도루의 모습에서 왜 그렇게 눈물이 흐르던 건지.
어쩌면 나는 그렇게 될 것을 책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저 '설마.... 설마.... 아니겠지'라는 마음으로 읽던 글이 현실이 되어 다가온 느낌인 것 같다.
인간은 존재하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생각하는 도루는 이즈미에게 자신이 죽게 된다면 히노의 기억에서 자신을 지워달라는 부탁을 한다.
마지막 부탁에서 조차 히노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서 자신의 존재를 없애달라는 도루.....
마음은 너를 그리니까
히노의 수첩과 노트북에서 도루의 흔적을 지웠지만 히노는 결국 자신만의 비밀 장소에서 도루의 기억 한 조각을 찾아냈다.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은 그 아이의 그림을 보며 가슴 한편에서 무언가를 기억해야만 할 것 같은 그런 기분을 느꼈다.
모든 것을 알게 된 히노는 기억나지 않는 도루의 기억을 찾기 위해 하루하루 노력했고 어느 날 도루의 기억에 대해 묻는 이즈미에게 크로키 북을 건네는데 그곳에는 사진에도 없는 오로지 히노와 이즈미, 도루의 기억에만 존재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곳에 그려진 도루는 이즈미가 봤던 다정한 얼굴로 히노를 바라보는 도루가 그려져 있었다.
비관적이었던 이 들의 첫사랑은 처음 마주하는 삶의 고난을 진지하게 헤쳐 나가는 모든 사람을 응원하는 마음을 갖게 만드는 그런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실패가 되든 성공이 되든 고난을 진지하게 지나온 모든 사람은 그만큼 성숙해진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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